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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사 대차성

김영우 본지 객원기자

일본의 나라(奈良)시 동쪽에는 나라 제1의 관광지인 동대사가 있고 서쪽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사찰 서대사가 있다. 서대사는 동대사를 창건하고 차나무를 심은 백제승려 행기(行基)보살(668~749)의 좌상이 있는 곳이다.

서대사는 동대사와 맞먹는 장대한 규모의 사찰이었으나 3회에 걸친 화재로 지금은 한적한 소규모의 사찰이 되었다. 차인들은 한번쯤 들려 볼만한 곳이다. 서대사에 들어서면 전각이 없어진 기단과 석등(石燈)이 보인다. 석등의 화사석(火舍石-註1)에 있는 화창(火窓-註2)에 나무틀을 한 것을 보고 놀랐다. 옛날 석등을 사용할 때 만든 화창을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본적이 없었는데 이곳에서 보게 된 것이다. 옛것을 그대로 보여 주려는 일본인들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사찰에 있는 석등은 어둡고 깜깜한 중생의 마음을 진리의 빛으로 밝혀주어 바른길로 인도한다는 의미로 사찰의 불당 앞에 탑과 함께 세워진다.

금당입구에서 대형다기에 담겨진 차를 나누어 먹는 서대사 큰차담기(大茶盛) 포스터를 볼 수 있었다. 율종(律宗)의 에이슨(睿宗)스님이 1239년 정월 하찌만궁에 올린 차의 여줄가리(註3)를 스님들에게 마시게 하였는데 이것이 서대사의 큰차담기 시초가 되었다.

찻그릇-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 앞 희견보살상(머리에 대형 다기를 이고 있다) 김명배의 저서 ‘일본의 다도’에 의하면 큰차담기는 지름 30cm를 넘는 큰찻잔에 다차를 담아서 참가자에게 마시도록 베푸는 것이라고 하였다. 큰차담기에 사용한 큰찻잔은 상위에 커다란 차선(茶?)과 함께 놓여있었다. 서대사의 차를 나누어 먹는 다법은 원효의 무애차(無碍茶)에서 왔다고 한다. 원효의 무애사상을 실천하는 한 방법인 무애차는 일찍이 원효가 신라의 서민, 천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로부터 배운 음식 나눠먹는 형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신라의 서민, 천민들은 가난한데다 먹을 것이 부족하여 그들 특유의 공평한 분배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큼직한 바가지 하나에다 먹을 것을 구걸하여 음식을 얻어오면, 바가지를 가운데 놓고 빙 둘러 앉아 정해진 순서에 따라 바가지에 손을 넣어 한 움큼씩 음식을 집어먹거나 숟가락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옆 사람을 생각하여 늘 조금만 덜어 내곤 했다. 서대사 금당의 부처님께 합장하여 예를 드린 후 불단 뒤쪽으로 슬며시 가보았다. 불단 뒷벽에는 16나한도가 붙여져 있었는데 오래되어 귀퉁이가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나한도를 보고 나는 또 한번 놀랐다. 그림속의 나한들은 호랑이를 깔고 앉아 있었는데 나한에게 .깔린 호랑이 모습이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친근감 있게 그린 우리의 호돌이형 호랑이였다.
촬영 일본 그림에서 호랑이는 일반적으로 사무라이처럼 사납고 날카롭게 그려지지만 우리 조상들은 공포의 대상인 호랑이를 친밀하게 표현해서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였다. 그래서 우리 민화 속의 호랑이는 유머스럽고 친근감 있는 호랑이이다. 이것은 우리 조상의 멋이며 여유이다. 우리 조상들의 유머스럽고 친근감 있는 호랑이의 그림을 서대사에서 본 것이다. 16나한도의 사진을 찍어 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었다. 행기보살, 석등의 화창, 무애차, 나한에 깔린 호랑이 모습, 모두가 처음 보는 것이지만 친숙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있기 때문 일 것이다. 1월 하순의 나라는 동백꽃 닮은 수바끼의 떨어진 꽃잎이 주변을 붉게 만들어 놓아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고 흰 동백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註1)불의 집이란 뜻으로 불은 진리의 빛 ,곧 부처를 상징, 따라서 화사석은 부처가 머무는 집의 의미를 가짐
註2)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 본래는 나무틀에 창호지를 붙여 불이 꺼지지 않도록 했음.
註3)①주된 물건이나 줄기에 딸린 물건, ②중요하지 않은 나머지,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