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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禮節)--이란 사람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도리와 질서이다.

정신과 형식은 그 사회의 공통된 약속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절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천해 왔다. 한 사회의 계급과 계층을 시작으로 지역·인종·시대에 따라 문화가 달라지므로 그에 걸맞게 변하는 특징은 예절의 다양성이다.
불어의 에티켓(tiquette)도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예의범절이니 에티켓이니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사회생활에 있어서 사람이 가져야 할 올바른 생각과 언어와 행동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예기(禮記)』에, '행동을 바르게 하고 말을 도리에 맞게 하는 것이 예의 근본이다(行修言道 禮之質也)'라 하여,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그 말과 행동의 일치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지금은 프로토콜(protocol)이란 용어가 보편화했지만, 에티켓이란 말은 프랑스의 루이 14세 때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말뚝을 박고, '꽃밭을 훼손하지 맙시다'하는 팻말을 꽂았는데, 이 팻말을 에티켓(tiquette)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어로 에티켓이란 원래 '꼬리표'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심지어 식물에까지도 어떤 상처도 입히지 않으려는 인간의 인격과 품위를 엿볼 수 있다.
고대 중국에 있어서 정치와 종교와 도덕 등이 분화되기 이전에는 이런 것들을 모두 '예'라고 불렀다. 『논어(論語)』에서도 '법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은 법망을 빠져나가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지만,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수치를 알아 바르게 된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고 했다.
예에 의한 통치란, 예의 이름으로 국가의 법제를 서서히 확립시켜, 왕이나 백성들로 하여금 각각 분수를 지키게 하여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 방식으로서, 따라서 예의 범위는 아주 넓고 합리적인 실천규범이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으며'(『논어』), '이웃을 내 몸처럼 생각하는'(「마태복음」) 것이 바로 예절이나 에티켓이 함유하고 있는 기본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절이나 에티켓은 시대와 장소, 그리고 문화의 양상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봉건시대의 예절이 오늘에 통하지 않으며, 서양의 예절이 원형대로 우리나라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앞서 말한 기본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예절은 능동적으로 그때그때 걸맞은 일정한 방법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지만, 나를 낮춤으로써 남을 높이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예절의 근본정신만큼은 변화하지 않는 이치로 남아 있다.
그 가운데 절은 몸을 굽혀서 예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예절 표현 방법의 정수(精髓)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의 사전적 의미는 '몸을 굽혀 경의를 표하는 인사'로 한자로는 '배(拜)'인데, 『설문해자(說文解字)』의 단주(段注)에 '머리를 손에 대는 것'이라 하여 땅을 짚은 손에 머리를 대고 절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절은 유교, 특히 주자학이 정치이념으로 수용되면서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바탕이 되었다. 관련 문헌들로는 김장생(金長生)의 『가례집람(家禮輯覽)』을 비롯해 이익(李瀷)의 『성호사설유선(星湖僿說類選)』중의 「인사(人事)」편, 정구(鄭逑)의 『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設分類)』중의 「잡례(雜禮)」, 유장원(柳長源)의 『상변통고(常變通攷)』중의 「통례(通禮)」와 『거가잡의(居家雜儀)』등이 있다.
이들 문헌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절은 자세에 따라 차수(叉手)·읍(揖)·궤(?)·배(拜)의 네 단계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현대로 넘어와 앞에서 설명했듯이 절은 그 지역과 시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남자의 절보다 여자의 절의 이질성은 더욱 심각하다.
남자의 경우는 전통한복이나 양복 모두가 바지이기 때문에 절을 하기에 불편함이 없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전통한복은 긴 치마이지만 요즘에 와서는 짧은 치마에 편안한 바지를 입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긴 치마를 입었을 때는 상관이 없지만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고 두 무릎을 벌리고 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문화란 그대로 지켜져야 할 것이 있는가 하면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짧은 치마나 바지로도 쉽게 할 수 있는 절이 정착이 되었으면 한다.
『가례집람(家禮輯覽)』에서는 절의 종류를 남녀를 구별해 큰절, 평절(平拜), 약식절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평절의 경우, 이 책의 근간이 되는 『주자가례』에서 주자(朱子)가 설명했듯이 '평등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지만, 절은 연소자가 웃어른에게,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제자가 스승에게 등, 계층·계급상 아래에서 위로 행하는 예절 형식이니만큼 이는 적당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 '뵙는절'이나 '인사절' '새배절'로 명칭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는 큰절·뵙는절·상례절로 나눠 설명하고자 한다.
큰절은 혼례·현구고례(見舅姑禮)·고희(古稀), 부모의 회갑이나 칠순 등 큰 예를 갖출 때 하는 절로 그 의식에 따라 수모(手母)가 부축해 도와주기도 한다. 절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한복 작용시에는 가부좌를, 평상복일 경우에는 무릎을 꿇고 한다.
뵙는절(인사절, 세배절)은 평상시에 어른을 뵐 때 하는 절과 명절 때 하는 절로, 하는 방법은 한복과 평상복으로 나눠 큰절과 같다.
상례절(제례절)은 공수(拱手)한 손에 위치가 바뀌지만 망자가 가족 등 일가 친척이나 특별한 관계가 아닌 보통의 조문을 갈 때는 공수한 손의 위치는 바뀌지 않는다.
이들 절의 기본은 공수인데, 절을 시작할 때도 공수로써 하고 마무리를 할 때도 공수로 예를 갖춘다. 공수에서 남자의 경우 왼손이 오른손 위로 가고 여자는 반대가 되는, '남좌여우(男左女右)'의 이치는, 태양광선은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에 생명이 있는 것은 태양광선을 가장 잘 받는 남쪽을 향하는 것이 정칙(正則)이기 때문이다. 이는 남쪽을 향할 경우 왼편이 동쪽이고, 오른편이 서쪽이며, 동쪽은 해가 뜨니까 양(陽)이고, 서쪽은 해가 지니까 음(陰)으로, 남자의 방위는 동쪽인데 그 동쪽이 왼 편에 있으니까 남자는 좌(男左)이고, 여자의 방위는 서쪽인데 그 서쪽이 오른편에 있으니까 여자는 우(女右)가 되는 것이다.
이는 남동여서(男東女西)의 방향과 상관이 있는 것으로, 손잡는 데도 음양의 이치를 존중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